“강요 대신 환경을 만든다” AI 네이티브 기업은 리더십이 어떻게 다른가 ③

앞서 인터뷰에 참여한 감마, 앤트로픽, 구글 딥마인드의 구성원 세 사람에게 물었다. 회사가 무엇을 해줬을 때 자신의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었는지를. 세 사람의 답은 의외로 같은 곳을 가리켰다.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환경을 만들었다.

세 사람의 경험이 가리킨 그 환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AI 중심 기업을 만들기 위한 리더십 원칙 다섯 가지로 압축했다.

원칙 1 먼저 써보라, 가볍게 시작하라

앤트로픽의 이엽 APAC 파트너십 담당 총괄은 “AI에 익숙하지 않은 조직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려 하기보다, 우선 가볍게 시도해보며 가능성을 탐색하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시작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개인 차원에서 커뮤니티 행사나 세미나 등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이 AI를 어떻게 고민하고 활용하는지 가볍게 접해보는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는 해커톤을 열어 직접 경험해보는 방식을 추천했다. 핵심은 이를 ‘놀이’처럼 접근하는 데 있다.

이 총괄은 “성과 평가와 연결하기보다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AI에 대한 거부감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고 조언했다.

업무 특성상 스타트업을 많이 만나는 이엽 총괄은 최근 다양한 해커톤 형식이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AI 도메인을 미리 사둬서 해커톤 참가자가 거기에 맞는 비즈니스를 2시간 안에 만들고, 우승하면 도메인을 선물로 받는 형식이다.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시간을 시작 후 1시간으로 제한하고, 이후에는 AI 에이전트가 나머지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형태의 해커톤도 등장하고 있다.

감마의 안채민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AI·혁신 담당)도 같은 맥락의 경험을 꺼냈다. 그는 “나 역시 처음에는 회사 깃허브와 별개로 개인 컴퓨터 안에 폴더 하나를 만들어 가볍게 시작했다”라며 “처음부터 거창하게 접근하기보다는 직접 써보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유행하는 AI 도구를 따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 흐름을 실제로 개선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원칙 2 강요가 아니라 환경을 만들어라

안채민 디자이너에 따르면, 감마에서는 AI 도구 사용을 직접 지시하는 사람이 없다. 대신 입사 첫날부터 모든 AI 도구에 대한 계정과 접근 권한이 주어진다. 사용량에 대한 상한선도 사실상 없다. 안채민 디자이너는 “감마의 철학은, 최대한 많이 활용해서 본인의 속도와 품질을 3배, 10배로 높일 수 있다면 마음껏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앤트로픽은 여기에 더해 조직 차원의 교육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특히 자사 AI 기능과 서비스 활용을 전담해 교육하는 팀이 별도로 운영되며,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기 전 사용법과 활용 사례 등을 전사적으로 공유한다. 관련 교육도 매우 주기적으로 진행되며, 참석하지 못한 직원들은 녹화본을 통해 언제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원칙 3 직무 경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아라

안채민 디자이너는 직무를 엄격하게 구분하던 기존 관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디자이너·엔지니어·PM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던 세계는 사라지고 있다”라며 “PM이 디자인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어 올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제안을 경청해야 한다. 올바른 솔루션이 프로덕션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만들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표현했다.

앤트로픽 내부에서도 직무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이엽 총괄에 따르면, 연구원들이 클로드 코드를 활용해 직접 대시보드와 시각화 도구를 만들고 있다. 프론트엔드 개발 경험이 없는 연구자가 자신만의 분석 도구를 직접 구축하는 것이다. 이엽 총괄 스스로도 이전에는 개발팀에 의뢰해야 했던 작업들을 이제는 직접 처리하고 있다.

원칙 4 AI는 대체재가 아니라 협업 도구임을 명시하라

AI가 많은 작업을 대신 수행할 수 있게 됐지만, 무엇을 만들고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지를 결정하는 역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안채민 디자이너는 “클로드 코드를 사용하더라도 우리 제품 코드베이스에 이미 존재하는 토큰과 컴포넌트를 활용하도록 꾸준히 가이드해야 한다”라며 “현재 어떤 코딩 에이전트도 모든 업무를 전부 대신할 수는 없다”라고 표현했다.

구글의 서준표 PM은 “AI는 한 번에 좋은 결과를 내주지 않는다. 많이 쓸수록 더 많은 요청과 수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라며 “AI가 모든 것을 대신해줄 것을 기대하기보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질문을 다듬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칙 5 AI를 두려워한다면, ‘더 나은 방법’을 보여줘라

안 디자이너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 자체는 충분히 현실적인 감정이라고 봤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말로 안심시키기보다, 더 빠른 검증과 더 나은 결과물을 직접 보여주며 동료들을 설득해왔다. ‘AI를 써야 한다’는 구호보다, 실제 업무 품질과 속도가 달라지는 장면을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이엽 총괄은 AI로 만든 결과물에 대한 평가 문화 역시 긍정적으로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AI가 한 작업과 사람이 한 작업을 구분하고, AI를 활용한 결과물을 ‘본인이 직접 한 일이 아니다’라며 평가 절하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활용 경험을 드러내기를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효율적으로 활용한 방식이나 업무 개선 사례가 조직 안에서 공유되지 않으면, 결국 AI 활용 문화 자체도 확산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jihyun.lee@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