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보다 에이전시, 정답보다 사고방식” AI 네이티브 기업은 어떤 인재를 뽑는가 ②

AI가 바꾼 일의 문법

감마의 안채민 디자이너는 9년 경력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다. 과거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핵심 업무 도구는 피그마(Figma)였다. 하지만 안 디자이너의 작업 환경에선 이제 피그마가 없다. 대부분의 디자인 작업은 클로드와 클로드 코드에서 이뤄진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면, 프로젝트 관련 맥락(노션 문서, 감마 슬라이드, 회의록 등)을 클로드에 제공한다. 그 다음 그가 심어둔 맞춤형 프롬프트 ‘스킬(Skill)’ 중 하나가 작동하면, 클로드가 문제에 대해 15~20개의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진다. 이때 타이핑이 아닌 음성 입력 도구로 클로드와 말로 대화한다. 문제가 명확해지면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클로드 내에서 프론트엔드를 시각화한 아티팩트(초안)를 만든다.

이 아티팩트를 클로드 코드로 옮기면, 실제 AI 모델 API에 연결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다. 사용자가 버튼을 클릭하거나 메시지를 입력하면, 실제 AI 모델이 즉시 응답하는 수준이다.

안채민 디자이너에 따르면 과거에는 이런 형태의 프로토타입을 사용자 앞에 내놓기까지 지금보다 2~3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제작 속도가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정적인 디자인 시안이나 단순 클릭형 화면이 아닌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 자체를 빠르게 만들고 있다. 덕분에 사용자가 기능을 직접 사용해보며 반응할 수 있게 되면서, 훨씬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용자 피드백을 얻고 있다.

도구의 전환은 디자이너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앤트로픽의 APAC 파트너십을 담당하는 이엽 총괄은 개발 관련 경험은 없지만 앤트로픽 합류 이전부터 스스로 AI를 업무의 핵심 도구로 쓰고 있다. 특히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업무를 할 때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이엽 총괄은 “예전에는 데이터 분석을 하려면 직접 BI 도구에 들어가거나 파이썬 코드를 작성해야 했다”며 “이제는 엑셀 파일을 클로드에 올리고 ‘이런 관점에서 분석해줘’라고 자연어로 요청하며 훨씬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구가 바뀌자 업무의 범위도 넓어졌다. 이엽 총괄은 앤트로픽의 한국 지사에서 채용된 첫 번째 직원인데, 업무 범위는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APAC 전역에서 클로드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앤트로픽이 아시아 지역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는 단계인 만큼,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수는 적지 않다.

이 상황에서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제한된 인력이라는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셈이다. 이엽 총괄은 스타트업 대상 AI 무료 사용 지원 프로그램의 반복적인 운영 업무, 신청 검증과 지원금 지급, 유효기간이나 추가 지원 관련 문의 대응 등을 AI로 자동화했다. 이전에는 메일로 일일이 답변하고, 파편화된 채널의 문의를 모아 처리해야 했던 업무들이다.

여기에 APAC 지역 스타트업의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국가별 특성과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지원 전략을 만들어가는 업무까지 클로드와 코워크(Cowork)를 활용해 수행하고 있다. 이엽 총괄은 “반복적인 업무는 최대한 자동화할 수 있도록 기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에 입사하기 전 직접 스타트업을 창업했던 구글 딥마인드 제미나이 팀의 서준표 PM도 AI가 업무를 재편하는 흐름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구글에서 안드로이드 XR 팀에서 1년간 근무한 뒤, 딥마인드 제미나이 팀으로 옮겨 1년째 일하고 있다. 다만 PM의 업무 특성상, 도구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는 조금 다르다. 디자이너나 파트너십 담당자처럼 특정 업무가 통째로 전환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업무의 속도가 빨라졌다. 서준표 PM은 “세팅만 잘 해놓으면 정말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제품을 만들어보거나,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공부할 때도 정보에 접근하는 게 너무 쉬워졌다”고 말했다.

이때 개별 업무가 빨라진 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늘었고, 결과적으로 총 업무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서준표 PM은 “업무 하나당 걸리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까 총 업무량은 오히려 늘어났다”고 말했다. 생산성의 향상이 ‘조기 퇴근’이 아니라 ‘더 많은 실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모호함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도구가 바뀌고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채용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 사람이 각자의 회사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은 달랐지만, 각자의 경험에서 비슷한 흐름이 느껴졌다. 직무 역량만큼이나, 그 사람이 어떻게 사고하고 움직이는지를 들여다봤다는 점이다.

감마는 의도적으로 적은 인력 규모를 유지하는 기업으로, 현재 직원 수는 약 80명 수준이다. 그만큼 직원 한 명이 만들어내는 영향력과 역할의 무게가 크며, 회사와 맞는 인재를 찾는 과정에도 오랜 시간을 들인다. 별도 인터뷰에 응한 감마의 CEO 그랜트 리는 안채민 디자이너가 맡은 직무의 적임자를 찾는 데 8개월 이상을 투자한 끝에 그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그랜트 리는 오랜 시간을 투자한 배경에 대해 “AI와 디자인 역량을 모두 갖춘 인재는 매우 드물다”며 “그만큼 신중하게 채용 과정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안채민 디자이너가 감마 채용 과정에서 인상적으로 꼽은 것은 ‘모호함(ambiguity)’, 즉 정해진 답이 없는 상황에서 지원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피는 방식이었다. 포트폴리오 리뷰도 물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인 과정에서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 판단의 근거와 의도를 설명할 수 있느냐였다.

안 디자이너는 “최종 면접에서는 상당히 넓은 범위의 문제가 주어지고,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직접 보여줘야 했다”며 “정답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 사람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 팀에 없는 어떤 능력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많이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채용을 주관했던 리 CEO는 “감마는 당시 AI를 단순한 기능으로 다루는 수준이 아니라, AI 중심으로 사고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채민 디자이너는 챗GPT 시대 이전부터 치매 환자를 위한 대화형 AI 제품을 설계한 경험이 있었는데, 이런 배경은 매우 드물다고 보았다”며 “그 경험이 AI 기반 사용자 경험에 대한 뛰어난 직관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기업 철학에 대한 진정한 공감”

앤트로픽의 채용에서는 지원자의 가치관과 태도까지 중요한 평가 대상이 된다. 이엽 총괄이 면접 당시 기억에 남았던 것은 ‘조직 문화 적합성 인터뷰’였다. 직무 역량을 확인하는 면접과 별도로, ‘안전한 AI’를 지향하는 앤트로픽의 철학에 공감하는지 확인하는 면접이다.

이엽 총괄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그 과정에서 ‘내가 살아오면서 정말 이 가치에 떳떳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엽 총괄은 앤트로픽 합류 전부터 회사와 협업해 왔지만, 면접은 그와 인연이 없는 다른 팀이 맡았다. 그는 “기존에 알던 사람일수록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지식보다 에이전시”

서준표 PM은 구글 딥마인드의 채용 기준과 과정에 대해선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신 자신이 직접 경험한 미국 빅테크 및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서 최근 자주 듣는 인재 역량을 소개했다. ‘하이 에이전시(High Agency)’라는 개념이다.

에이전시란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하이 에이전시는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실제로 실행하는 능력이자,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를 의미한다.

물론 이 개념이 AI 등장 이후 나온 것은 아니다.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는 점에 방점이 있다. 서준표 PM은 “과거에는 순수한 지적 능력(raw intelligence) 자체가 핵심 경쟁력이었다. 뛰어난 지적 역량을 가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드물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AI가 부족한 지식을 보완해주면서 지적 능력 자체의 희소성은 낮아졌다. 반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능력, 즉 에이전시(agency)는 여전히 희소하다고 업계에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AI를 통해 지식이 평준화된 지금,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능력보다 의지의 문제에 가깝다는 시각이다. 스스로 움직이려는 의지만 있다면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해 상당 부분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것이 서준표 PM의 해석이다.

AI 시대의 인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그렇다면 이런 인재를 채용한 이후에는 어떻게 육성할까. 세 조직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자발적 학습과 공유의 문화였다.

감마에는 ‘AI 코딩 길드(AI Coding Guild)’라는 자발적 모임이 있다. 엔지니어들이 시작했지만 디자이너도 참여하며, 2주마다 워크플로와 팁을 공유한다. 비개발자를 위한 슬랙 채널도 한 PM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지만, 성과가 눈에 보이니 자연스럽게 확산된다.

앤트로픽은 자발성에 체계적 지원을 더한다. AI 도구 교육 전담 팀이 있어서 새로운 제품 출시 전에 사용법과 활용 사례를 교육하고, 교육은 매우 주기적으로 열린다. 동시에 동료 간 비공식적 공유도 활발하다. 이엽 총괄은 “내가 작성한 프롬프트를 공유하면 다른 동료가 더 효과적인 표현 방식을 제안해주기도 한다”며 “실제로 적용해보면 결과가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서준표 PM은 회사 밖에서의 학습도 강조했다. 그는 “영미권 개발자 커뮤니티는 자신이 만들거나 배운 것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며, 소셜미디어 X의 영어권 개발자 커뮤니티와 유튜브, 블로그 등을 통해 최신 동향을 꾸준히 따라가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런 변화에 대한 피로감도 존재한다. 서준표 PM은 “AI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그나마 변화를 따라가기 수월한 편”이라며 “본업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AI를 어떻게 업무에 접목할지 고민해야 하는 분들은 훨씬 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 AI 산업 한가운데에 있는 실무자조차 이렇게 느낀다는 점은, 현재의 변화 속도가 단순히 ‘빠른’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을 보여준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역량

AI를 가장 앞서서 다루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제 막 시작점에 선 이들에게 건네는 조언은 무엇일까.

안채민 디자이너는 두 가지 답을 제시했다. 첫째, 기본기를 소홀히 하지 말 것. 안 디자이너는 “사용자를 우선시하는 방법, 경청하는 방법, 비주얼 디자인의 기초. 이런 기본기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필수”라며 “AI가 있다고 해서 이런 기본을 모르는 디자이너를 뽑을 회사는 없다”라고 말했다.

둘째, AI의 제약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안채민 디자이너는 “모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있고,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도 존재한다”라며 “그 제약을 이해할수록 오히려 제약을 전제로 문제를 설계하고 해결하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면접 과정에서 AI가 잘하는 것보다 ‘어디서 실패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높은 수준의 디자인 역량을 증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준표 PM은 하이 에이전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PM이라는 직무에서 그가 특히 중요하게 꼽은 역량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용자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다. 서준표 PM은 “AI가 시장 조사나 데이터 분석은 굉장히 잘해준다”면서도 “사람을 직접 만나 감정이 섞인 이야기를 듣고, 그 안의 미묘한 뉘앙스를 제품에 녹여내는 건 아직 AI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다. 그는 “결국 제품은 사람과 함께 만드는 일”이라며 “상대와 신뢰를 쌓고 유대를 형성하면서 방향을 맞춰가는 과정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jihyun.lee@foundryco.com

*이번 시리즈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